[인터뷰] "디지털 경제는 디지털 화폐 없이 불가능하다"…해시드오픈파이낸스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특화 메인넷 '마루'를 만드는 이유

강남대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빌딩 20층. 해시드 오픈 라운지에 들어서면 천장의 원형 간판에는 #HASHED EMERGENT, FACTOMIND 같은 이름들이 나란히 빛나고 있다. 라운지 한편에는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와 뉴스가 대형 스크린에 흐르고, 반대편에는 포럼과 밋업을 위한 스테이지가 자리 잡고 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 김호진 해시드오픈파이낸스 대표를 만났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산과와 수학을 전공한 개발자 출신. BCG 컨설턴트를 거쳐 해시드에 합류한 그는 지금 원화 스테이블코인 특화 메인넷 '마루(Maroo)'를 조용히 빌드하고 있다.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마다 밀도가 있었다.

"통화의 1%만이 온체인으로 옮겨졌다"

김 대표는 해시드 내에서 핀테크 관련 사업을 총괄하며 해시드오픈파이낸스와 R&D 조직인 샤드랩(Shard Lab) 두 법인을 겸직하고 있다. 두 조직의 역할 구분은 단순하다. 샤드랩이 어카운트 추상화 같은 원천 기술을 연구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담당한다면, 해시드오픈파이낸스는 그 기술을 국내 규제와 제도권 플레이어들과 함께 현실에 배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조직이 출범하게 된 문제의식은 뚜렷했다. "현재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도 전체 광의 통화량(M2) 대비 약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굉장히 커졌다고 하지만 실생활 금융의 약 1%만이 온체인으로 옮겨진 셈이죠. 왜 그럴까를 고민했습니다."

그가 진단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였다. 프라이버시, 컴플라이언스, 그리고 거버넌스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내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 모든 거래가 공개됩니다. 비용 구조가 영업 기밀인 기업이 이런 환경에서 블록체인을 쓸 수 있을까요? 저 같아도 안 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규제된 금융(Regulated DeFi)이 온체인으로 들어오려면 현행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한 나라의 금융 인프라는 국가 주권이자 보안입니다. 외부 네트워크에 장애가 생겼을 때 국내 금융 전체가 영향을 받아선 안 됩니다."

"왜 마루인가…한국이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으려면 퍼블릭 체인이어야"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답이 메인넷 '마루'다. 마루는 이더리움, 솔라나 등 기존 L1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설계한 레이어1(L1) 메인넷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특화된 구조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 문제를 이유로 프라이빗 체인을 쓰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김 대표의 답은 단호했다. "한국이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으려면 퍼블릭 체인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다른 블록체인과 상호운용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재 금융의 한계를 동시에 해소해야 합니다. 퍼블릭하고 오픈 소스라는 블록체인 본연의 성격은 지키면서 현실의 제약을 풀어내는 중간점을 찾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마루의 핵심 설계 중 하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별도 토큰 없이 네이티브 토큰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거래 수수료(가스비)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낸다. 그는 이 설계가 단순한 편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은 금융망이기도 하지만 차세대 클라우드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실행하는 레이어죠.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가스비로 쓰인다는 건 이 네트워크가 활발해질수록 추가적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공공 인프라의 혜택을 원화 경제 참여자 모두가 고르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별도 토큰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에이전트 화폐가 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을 묻는 질문에 김 대표는 단기와 장기를 나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한국의 크립토 시장 자체가 이미 특별하다. "BTC 일간 거래량 글로벌 1위를 찍을 때도 있는 시장입니다. 비기축 통화 중에서 원화만큼 잠재력 있는 통화가 없는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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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더 강조한 건 장기 그림이었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스테이블코인들이 에이전트 화폐가 될 겁니다. 인간과 AI 에이전트가 모두 쓰는 화폐. 저희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디지털 경제는 디지털 화폐 없이 불가능하다(You cannot build digital economy without digital currency).' 에이전트 이코노미를 만들려는데 에이전트 커런시가 없으면 그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AI 경쟁 구도에서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고 봤다. "더 많은 LLM,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이 나오고 이것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게 된다면 단순히 AI 창업 생태계가 커지는 것 이상의 국가 단위 잠재력이 생깁니다. AI가 잘 될수록 스테이블코인의 중요도는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행기 표 자동 결제로 이해하는 에이전트 경제"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을 설명할 때 그는 아주 구체적인 예시를 꺼냈다.

"다음 달 도쿄 가려는데 항공권이 30만 원 밑으로 내려가면 알아서 결제해 줘라는 명령을 에이전트에게 내린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새벽 4시에 가격이 떨어졌는데 자고 있으면? 에이전트가 결제를 해야 하는데, 내 계좌를 다 열어줄 수도 없고, 30만 원이라는 한도만 열어줘도 이상한 걸 살 수 있고. 결국 에이전트의 인증, 에이전트가 내 명령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지 검증, 그 과정에서의 결제 권한 위임까지 해결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말했다. "결제 주체가 인간에서 에이전트로 바뀌면 지금까지 인간 중심으로 쌓아온 모든 금융 인프라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마루가 AI 네이티브 체인을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내 지갑에 연결되어 허락된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해시드 VC 산하라 배타적이지 않을까? 오히려 반대"

해시드라는 VC 산하 조직이라는 점이 오히려 개방성을 제약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역설적이라고 답했다. "저희 본체가 벤처캐피탈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시장 전체가 커져야 저희가 편익을 갖습니다. 어느 한 회사가 잘 된다기보다, 잘 된 케이스 하나가 나와야 다른 것들도 따라오고 시장이 커집니다. 그 마중물이 되는 게 이 회사의 설립 목적입니다."

그는 마루를 해시드의 독점 프로덕트로 볼 수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저희는 혼자서 뭘 하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렇게 쓰고 싶다는 회사가 있을 때,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은행이든 핀테크든 카드사든 비금융사든 상관없이요."

실제로 마루는 발표 전부터 다양한 시장 플레이어들에게 조건 없이 협의 창구를 열어두었다고 그는 밝혔다. 규제에 대해서도 그는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국내 논의가 규제에만 집중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규제가 명확화되지 않았더라도 만들고 개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서클이나 테더 같은 플레이어가 없었다면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겠죠. 실질적인 시도가 규제 논의도 촉진합니다."

테스트넷 완성, 5월 내 개방 예고

마루의 현재 개발 진척도를 묻자 김 대표는 구체적인 일정을 밝혔다. "이미 일부 라이브 서비스에서 내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1차 테스트넷은 완성된 상태입니다.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고도화 단계를 거치고 있고, 4월 말에서 5월 내로 더 많은 대상에게 테스트넷과 개발 툴킷을 개방할 예정입니다."

"이 변화에는 항상 기회가 있다, 계속 빌드하라"

인터뷰 말미, 약세장에서 힘들어하는 투자자와 개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천천히 답했다.

"감히 조언을 드리기엔 저보다 오래 계신 분들이 더 많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뀌는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이 들어왔을 때보다 더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SaaS 회사들이 AI로 위기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큰 변화에는 항상 기회가 존재합니다."

그는 블록체인과 AI가 맞닿는 지점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을 마쳤다. "시장과 상관없이 미래는 옵니다. 기술의 진보, 사회의 진보, 사업의 진보는 오기 마련입니다. 빌더분들께서 상상하시는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데 많이 노력을 써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도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

강남대로의 노을이 유리창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해시드 오픈 라운지의 조명이 하나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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