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의 암호화폐 규제법이 또다시 국회를 넘지 못했다. 대통령 거부권을 무효화하려던 시도가 실패하면서 관련 법안은 재차 무산됐고,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법(MiCA) 체계 도입도 지연되는 상황에 놓였다. 유럽 전역에서 공통 규제가 시행되는 가운데, 폴란드만 제도 정비가 늦어지며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번 표결은 단순한 입법 실패를 넘어 정치 갈등이 금융 규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반면 대통령 측은 규제가 과도해 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국 양측의 대립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제도 공백이 장기화되는 흐름이다.
문제는 이미 MiCA가 유럽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EU는 2024년 말부터 암호자산 발행과 거래, 수탁, 공시 등을 포괄하는 규제를 본격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은 이를 실제로 집행하기 위한 국내 법과 감독 체계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폴란드는 이 단계에서 멈춰 서 있다.
이로 인해 시장은 ‘규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규제가 불완전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 기존 사업자는 일정 기간 기존 법 체계 아래에서 영업을 이어갈 수 있지만, 신규 사업자 입장에서는 인허가 기준과 감독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투자자 역시 분쟁이나 사고 발생 시 어떤 제도 아래 보호받을 수 있는지 불확실성이 남는다.
더 큰 문제는 경쟁력이다. MiCA의 핵심은 유럽 단일시장 내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하면 다른 국가에서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패스포팅’ 구조다. 그러나 폴란드처럼 국내 제도 정비가 늦어지면 기업들은 규제가 명확한 국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본과 혁신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례는 유럽의 통합 규제 모델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공통 규칙이 존재하더라도 각국의 정치 일정과 입법 속도에 따라 시장 체감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암호화폐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에서는 규제의 유무보다 규제의 명확성과 집행 시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폴란드는 지금 그 마지막 단계에서 멈춰 있다. MiCA라는 틀은 이미 마련됐지만, 이를 실제 시장에서 작동시키는 장치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공백이 길어질수록 폴란드 암호화폐 시장의 불확실성과 경쟁력 약화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