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FT중문망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 관세 무기를 다시 꺼내들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많은 미국 정치인들도 관세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무역 적자 문제는 오래된 문제이며, 역대 대통령들의 해결책도 다양했습니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려 무역 적자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화 평가절하입니다. 이는 자국 통화로 계산된 수입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상승시키고 외화로 계산된 수출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하락시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론대로 달러 평가절하를 무역 적자 해결책으로 삼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레이건 대통령 취임 당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레이건은 연준 의장 볼커의 두 자릿수 금리 인상 정책을 지원했고, 감세를 통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은 낮아졌지만 달러 가치도 크게 상승했습니다. 1981년 1월 레이건 취임 당시 1달러당 200엔이 넘었던 환율이 1982년 11월 금리 인상 정책 최고점에서는 270엔을 넘었습니다. 금리 인상 정책이 1983년에 끝났지만 레이건 1기 임기가 끝나는 1985년 1월까지도 달러-엔 환율은 260엔 이상을 유지했습니다.
높은 국내 금리로 인해 미국 제조업은 자금 비용 부담이 커졌고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달러 강세로 인해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일본 제조업이 미국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제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고조되었습니다. 1982년 6월에는 디트로이트에 거주하던 화교 청년 Vincent Chin이 실직한 자동차 노동자들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첫 임기에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한 레이건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에 무역 적자 문제에 착수했습니다. 1985년 레이건 2기 임기 초, 미국은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의 대미 수출 흑자 해소를 위해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 파운드, 프랑, 마르크화 등을 대폭 평가절상시켰고, 이는 미국의 대유럽 수출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후 미국 정부는 금리 조정을 통한 환율 관리를 자주 사용하며 '저금리-저환율-저관세'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연방기금금리 인하로 국채 이자 지출이 줄어들어 정부 지출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감세가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정부의 인프라 투자와 달러 약세로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들어 내수가 진작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면서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며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했고, 위안화 가치도 상승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무역 적자 개선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정부의 달러 약세 정책이 주 간 발전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조업 부진의 근본 원인은 미국 산업의 '갈라파고스화'에 있습니다. 환율 정책은 국제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만, 산업 자체의 국제화 역량이 부족하면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 산업은 소형 트럭 보호무역정책에 의해 승용차 시장을 포기하고 상용 소형 트럭 생산에 주력했지만, 이는 유럽, 일본,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갈라파고스화'된 제품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장벽으로 전환했지만, 이는 '관세 인플레이션'을 초래했습니다. 관세로 인한 수입품 가격 상승이 국내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