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집행 중심 암호화폐 규제 기조를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SEC가 공개한 'Project Crypto'는 단순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미국식 규제철학의 근본적인 재편 신호로 해석된다. 이같은 변화는 미국 내부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규제 흐름에도 강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24년 7월 31일,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미국이 더이상 금융 혁신의 선도국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며 새로운 규제 접근을 공식화했다. 그는 '우리는 이끈다'는 발언과 함께 SEC가 암호화폐 시장 구조를 직접 설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Project Crypto'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이번 전략은 자국 내 기업, 자본, 개발자들이 유럽, 싱가포르 등 해외로 이탈하는 현실에 대한 내부적 각성이 배경이 됐다.
핵심 변화 중 하나는 암호화폐를 ▲디지털 상품, ▲디지털 컬렉터블, ▲디지털 도구, ▲토큰화 증권의 네 가지로 구분한 점이다. 이 중 세 가지는 증권이 아닌 자산으로 분류되며, 투자계약 성격이 사라지면 증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명확히 했다. 이는 암호화폐를 '영구적 증권'으로 간주하던 기존 SEC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한 역사적 조치로 평가된다.
SEC는 또한 향후 자산의 성격 변화에 따라 감독기관의 관할도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 체계를 다층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예를 들어, 디지털 자산이 증권에서 상품으로 전환되면 CFTC가 담당할 수 있도록 기능별 감독 구조를 재설계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같은 변화가 일시적 조정이 아닌 제도화를 위한 입법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됐다.
이번 SEC의 선언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해석되며, 미국 내 기업 활동과 자본 유입에 중장기적인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투자계약의 종료를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토큰이 일정 요건 충족 시 증권이 아님을 명확히 한 점은 업계 규제 리스크 완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이 같은 자산 구분 접근은 투명성 제고와 함께 시장 참여자들에게 명확한 법적 기준을 제공해, 실물 경제 연계 프로젝트나 NFT, 유틸리티 토큰 발행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운영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감독권한을 기관 간 유연하게 조정하는 구조는 규제 공백을 줄이는 동시에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정책 유연성 확보로 이어진다.
토큰포스트는 이번 SEC의 기조 전환을 단기 완화 조치가 아닌 규제 패러다임의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한다. 특히 ‘투자계약은 종료된다’는 원칙은 향후 글로벌 규제 표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며, 그에 따라 각국의 법적 프레임 자체가 변화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Project Crypto가 산업과 기술 발전을 제도적으로 수용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인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능 구분 없는 규제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초기 토큰 발행 방식을 영구적 규제 기준으로 고착화하고 있으며, 감독기관 간 역할 조정 없이 책임 논란만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입법 역시 규제 강화를 위한 보조수단으로만 인식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SEC의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글로벌 규제 중심국가로서 미국이 방향을 굳힌 이상, 한국 역시 ‘검토’와 ‘TF 구성’ 단계를 넘어 실행 중심의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
SEC는 규제에 대한 자기반성과 구조 개편을 통해 디지털 자산 시장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자산의 기능과 실질에 근거한 접근은 국제 기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으며, 한국이 그 흐름에 뒤처질 경우 산업 경쟁력, 인재, 자본 모두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이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검토가 아니라 본질적인 '방향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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