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상화폐 파생시장이 개인 투자자 중심의 고레버리지 투기 국면을 벗어나 기관 자본이 주도하는 정교한 금융 인프라로 재편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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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ETF·옵션 확산에 기관 자본 유입
26일 온체인 데이터 분석기업 코인글래스는 ‘2025년 가상화폐 파생시장 연간 보고서’에서 올해를 가상화폐가 주류 금융 시스템으로 더 깊게 편입된 구조적 분수령으로 정의했다. 과거 개인투자자들의 고 레버리지 투기가 시장을 이끌었다면 올해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와 옵션, 규제 준수 선물 상품 등을 통해 전통 금융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며 시장의 체질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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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결제약정 증가…CME 통한 헤지 거래 확대
이 같은 변화는 실제 자금이 묶여 있는 미결제약정(Open Interest·OI)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바이낸스의 파생상품 누적 거래량은 25조 900억 달러로, 글로벌 가상화폐 파생상품 시장 전체 거래량의 29.3%를 차지했다.
그러나 장기 자금이 체류하며 리스크 관리 용도로 활용되는 미결제약정 기준에서는 제도권 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CME의 올해 3분기 미결제약정 규모는 313억 달러(약 45조 313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CME는 지난해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약정 기준 바이낸스를 추월해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올해는 이더리움 파생시장에서도 미결제약정과 거래량 모두 처음으로 바이낸스의 개인 투자자 거래 규모에 근접하며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이는 단기 매매 비중이 높은 개인 투자자들과 달리 기관 투자가들이 헤지(위험 분산)와 현·선물 가격 차를 이용하는 베이시스 거래를 목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파생시장에 예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바이낸스가 개인 투자자 중심 거래를 담당하는 반면 CME는 전통 금융권의 대규모 자본이 머무는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옵션 도입과 미국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 액트 통과 등으로 규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기관의 가상화폐 시장 진입에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기관 참여는 비트코인(BTC)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 3분기 이더리움(ETH) 선물 일평균 거래량(ADV)은 전년 대비 355% 증가해 BTC의 성장률을 웃돌았다. 3월 출시된 솔라나(SOL) 선물도 CME 기준 9월 미결제약정이 21억 달러를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는 기관 투자가들이 BTC를 넘어 주요 알트코인까지 규제권 거래소를 통한 헤지 수단을 확보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실물 자산을 담는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도 핵심 변화로 지목됐다. 특히 미국 주식과 국채를 토큰화한 실물연계자산(RWA)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보고서가 인용한 토큰터미널 자료에 따르면 토큰화된 주식의 시가총액은 올해 2695%라는 기록적 성장률을 보였다. 글로벌 거래소 비트겟의 주식 계약 거래량도 3분기 기준 전 분기 대비 4468% 급증했다. 전통 금융 자산과 가상자산 간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코인글래스는 이러한 기관화가 시장 안정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경고했다. 10월 10일 미국발 관세 정책과 같은 거시경제 충격으로 단 하루 만에 최대 400억 달러 규모의 롱 포지션이 청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인글래스는 “BTC는 여전히 유동성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베타 자산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2026년에는 글로벌 규제 체계가 빠르게 수렴하고 유동성 환경이 전환점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과밀한 레버리지 구조 속에서도 청산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거래 인프라와, 규제 준수 영역과 탈중앙 영역 사이에서 자본이 효율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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