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이분의 댓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Something Big Is Happening" 글을 읽고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테죠.. AI가 나를 대체할 것 같은 미래.. (아니, 이미 대체한 것 같은..) 그리고 그 미래에 나는 무얼하고 먹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불안감.. 이죠.. 나도 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자녀들.. 손주들..은 더 걱정되는게 당연할 겁니다. 뭐.. 저도 이런 말도 안되는 미래에 대한 정답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냥.. 제 좁은 경험과 지식을 모아모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짧은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제 글은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아..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 정도로 보고.. 저 뿐만 아니라 이 미래에 대해 관심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루고루 듣다보면 거기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I. 기술이 바닥을 치자, 가치의 기준이 뒤집혔다 지금은 웬만한 기능 정도는 AI와 오픈소스로 며칠 만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한 회사에서 “혁신적인 기능”이라고 발표한 걸 보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죠. “이건 다른 회사에서도 곧 복제되겠다.” 제가 있는 블록체인 시장은 이 현상의 축소판이었습니다. Uniswap이 AMM DEX로 시장을 흔들자, 곧바로 Sushiswap이 등장했고, BNB 체인의 PancakeSwap, Polygon의 QuickSwap, Solana의 Raydium 같은 수많은 변주들이 연쇄적으로 복제되었습니다. DEX 뿐만 아니죠. Lending, NFT, 게임, 프라이버시, L1·L2. 카테고리 이름만 바꾸면, 안에 들어 있는 대부분 프로토콜들의 구조는 사실 거의 복붙에 가깝습니다. 이 오픈소스 시장에서는 코드가 복제 가능하기 때문이죠. 토크노믹스도, UI/UX도, 심지어 “혁신적인 로드맵”이라는 문장조차 복제됩니다. 그렇게.. “우리 기술은 남들과 다르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어갔고 지금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술 격차가 가치 격차를 보장해주던 시대는, 조용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II. 기술 피로 위에서 폭발한 감정, 그리고 밈 2021~2022년, 시장은 끝없이 기술을 외쳤습니다. 새로운 L1, 모듈러, 레이어2, 제로지식, 정교한 토크노믹스, 화려한 VC 라인업. 슬라이드와 백서는 갈수록 화려해졌고, “혁신적인”이라는 형용사는 점점 값싼 수식어가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남은 건 아래의 시장 풍경이었습니다. - 백서를 끝까지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 프로젝트 로드맵은 미뤄지고, 수정되고, 흐려졌습니다. - VC들은 TGE 혹은 고점에서 물량을 정리한 뒤 먼저 퇴장했고 - 시장에 남은 개인 투자자의 감정은 “나만 진심이었고, 돈 번 건 내부자뿐이네.” 이 한 줄로 요약되죠.. 그리고, 이 감정의 진공 상태를 채운 것은 밈코인이었습니다. 밈코인들은 시가총액 수십억 달러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역설적으로 “없음”에 가까웠습니다. - 거창한 비전도 없었고, - 복잡한 백서도 없었고, - 유명 VC와 기관 파트너십도 없었습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과장된 약속 대신, 대놓고 “장난”임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속마음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어차피 다 투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장난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코인이 더 낫지 않나?” 밈코인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VC가 주도하던 기술 내러티브에 대한 집단적 반작용이 되었습니다. “기술·혁신·파트너십”이라는 단어가 신뢰를 잃자, 사람들은 오히려 “강아지 짤 하나, 개구리 짤 하나”에 더 솔직하게 몰려들었습니다. 농담 같지만, 그 안에는 이런 심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쪽은 나를 속이려 들고 있지는 않겠지.” 물론, 2024~2025년 초에 폭발했던 대부분의 밈코인은 지금 거래량이 0에 수렴하고, 관심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음 속에서 드러난 진실 하나는 선명합니다. 기술은 끝없이 복제되지만, 밈·커뮤니티·문화는 그대로 복제되지 않는다는 것. 기술이 점점 평준화될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기술 바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기술은 더 이상 희소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III. 복제 가능한 것들, 그리고 복제 불가능한 것들 이 지점에서 질문이 바뀝니다. “기술이 흔해지는, 앞으로의 시장에서 진짜 희소한 것은 무엇인가?” Y Combinator의 Paul Graham은 “Do things that don’t scale(확장되지 않는 일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초기 Airbnb는 뉴욕 호스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숙소 사진을 찍어줬고, Stripe의 창업자들은 고객사 사무실에 직접 가서 결제 시스템 연동을 도왔습니다. 이건 코드가 아니라 관계의 영역이었습니다. 당신이 10년간 쌓아온 평판, 수백 번의 미팅과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네트워크, 당신의 이름이 들렸을 때 떠오르는 “아, 저 사람은 믿을 만해”라는 느낌. 이것은 프롬프트 몇 줄로 생성되지 않습니다. 영국 인류학자 Robin Dunbar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계 수가 약 150명 정도라고 주장합니다. 가장 가까운 5명, 그다음 15명, 50명, 그리고 150명의 의미 있는 관계라는 다층 구조는, 인간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신뢰 네트워크의 용량을 보여줍니다. 이 안에서 신뢰는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된 경험의 누적으로 형성됩니다. “이 사람은 약속을 지킨다.” “이 팀은 어려울 때 도망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는 장기적이다.” 이런 신념은 수십, 수백 번의 작은 상호작용이 쌓여야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한편, Chris Anderson은 『The Long Tail』에서 디지털 기술이 한계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면서 무한한 공급이 가능해진 시대를 설명합니다. 물리적 공간이 제한된 오프라인 시대에는 ‘대박 상품’에 모든 것이 쏠렸지만, 디지털로 넘어오자 오히려 희소한 것, 특정한 취향과 맥락을 가진 것들이 진짜 프리미엄을 얻을거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가진 자산을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 코드, 디자인, 기능 : 복제 가능합니다. - 트래픽, 팔로워 숫자 : 돈으로 매수 가능합니다. - 있어 보이는 스펙 : 빠르게 포장 가능합니다. 반대로, 다음 것들은 사실상 복제 불가능합니다. - 검증된 평판 : GitHub 스타 10,000개는 살 수 있지만, “저 사람이 만들면 믿고 쓴다”는 인식은 수년의 일관된 행위가 필요합니다. - 신뢰 네트워크 : 팔로워 10만 명은 광고로 만들 수 있어도, “진짜로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50명”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 인간적 연결 : GPT는 웃긴 농담을 만들 수 있지만, 타이밍과 상황, 상대의 컨디션까지 읽어 건네는 한 마디의 온도는 쉽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기술이 민주화될수록, 불평등은 복제 불가능한 자산에서 시작됩니다. 2026년 2월, AI는 하루에 수백 개의 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판, 신뢰, 관계, 문화 같은 것들은 하루에 0.001씩밖에 쌓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 0.001은 복리로 쌓이죠. IV. 기술은 평준화되지만, 당신까지 평준화 될 필요는 없습니다 AI는 오늘도 새로운 앱과 기능, 프로덕트를 양산합니다. 내일이면 그 기능들은 또 다른 팀에 의해 복제되고, 모양만 조금 다른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장에 깔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조용히 쌓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번 부탁하면 “기꺼이 도와줄 사람”들의 수. 당신의 이름이 언급될 때, 회의실 안 공기의 미묘한 변화. 위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당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머릿속 우선순위. 이것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지 않고, 검색 결과에 걸리지 않으며, 프롬프트로 생성되지 않습니다. 기술이 평준화되는 속도보다, 당신의 평판·관계·문화·커뮤니티가 쌓이는 속도는 훨씬 느릴 것입니다. 그 느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간에 포기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느림 덕분에, 끝까지 남는 사람의 수는 적습니다. 결국, AI가 복제할 수 없는 것은 “당신과 다시 일하고 싶게 만드는 어떤 느낌”입니다. 그 느낌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0.001이, 내일의 0.001과 만나서, 몇 년 뒤의 당신을 만듭니다. 기술은 빠르게 싸워서 이기는 사람을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가져가게 해주는 건, 천천히 쌓이지만, 잘 복제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당신이 오늘 선택해야 할 건, 어느 쪽의 스탯을 올릴지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결론일지도 모릅니다.

JESSI
@jessikim0317
선생님~저는 60대 할머니 입니다. 컴퓨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 올려주인 글은 소름 돋도록 이해되고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아들에게도 공유해 주었고, 손주 손녀가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도 어떤 준비가 필요할것 같은데 저로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네요. 혹시 제게 조언해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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