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히어로즈"는 블록체인 전문 매체 비온미디어 심준식 대표가 디지털자산 시장의 리더들과 나누는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 미래 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부산이 아시아 디지털자산 허브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모색합니다.

서울대 공대 출신, 국내 최고 로펌 광장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던 변호사가 왜 모든 걸 던지고 부산에서 디지털자산 스타트업을 창업했을까? 비댁스 류홍열 대표의 이야기는 '안정 vs 도전'이라는 현대인의 영원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 타고난 도전 DNA
"굳이 변호사를 그만두고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근데 생각해보니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안정적인 걸 오랫동안 참지 못하고, 새로운 걸 도전하고 스스로 뭔가 만들어가는 게 기본 성향인 것 같습니다."
류 대표의 도전정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의사 되라고 했지만 굳이 공대를 선택했고, 공대에서 또 완전히 방향을 틀어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거기서 또 틀어서 창업까지.
"부모님들은 제 성격을 아시니까 뭘 한다고 그러면 말리시지는 못하고 걱정만 많이 하시죠. 사실 그래서 더 뚝심 있게 해나가면서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고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2011년 잡지 표지의 비트코인 - 운명적 만남의 시작
류 대표가 블록체인 세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의외로 우연했다. 2011년 미국 유학 시절, 국제 변호사 단체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그 잡지 표지에 비트코인이 나온 것이다.
"제 칼럼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잡지 표지에 비트코인이 딱 나왔어요. '이런 게 있구나' 했다가 저는 잊고 있었죠. 그러다가 유학 갔다 와서 클라이언트들이 새로 생기는데, 블록체인 쪽 클라이언트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많았고, 류 대표는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깊이 발을 들이게 됐다. "단순히 거래소만 있는 게 아니라 커스터디라는 새로운 인프라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해외에서는 이미 그쪽이 더 유망하다고 보고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부산을 본사로 한 전략적 선택
많은 스타트업이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류 대표가 부산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처음에는 디지털자산 전문 신탁회사를 하려고 했어요. 자본시장법상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해석으로 잘 풀어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부산이 규제 특례 구역으로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돼 있어서 거기를 통해 한번 도전해보면 좋겠다는 게 가장 컸죠."
개인적으로는 부산이 고향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좋은 포인트"가 됐다. 실제로 비댁스는 부산에 본사를 둔 최초의 VASP(가상자산사업자)가 됐다.
창업 결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가족의 지지였다.
"본가 부모님들은 제 성격을 아시니까 그냥 약간 체념한 듯 '잘 해봐라' 이렇게 하셨고, 처가에서는 좀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가장 큰 건 저희 와이프가 '한번 해보라'고 일종의 허락을 해줬다고 그래야 되나, 용기를 줬다고 그래야 되나... 그래서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취득 성공, 비결은 '인력에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신규 VASP 인증을 받은 업체가 단 3곳뿐일 정도로 까다로워진 심사를 통과한 비결을 류 대표는 '인력'에서 찾았다.
"저희가 가장 큰 핵심 요인은 VASP에서 요구하는, 그리고 커스터디라는 사업을 운영해나가는 데 인력을 뽑는 데 있어서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겁니다. 컴플라이언스 조직, 기술 조직, 보안 조직... 국내 커스터디 기업들 중에서 가장 좋은 분들을 다 모셨고, 업계에서 진짜 내놓으라 하는 분들로 구성했어요."
특히 규제기관과의 소통 방식도 남달랐다. "보통은 자문을 받는 제3자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서 설명하겠다, 만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포인트로 많이 접근해서 설득했어요."
"80% 법인화 시대가 온다" - 2025년 기관투자 시장 전망
2025년 법인계좌 허용으로 열리는 기관투자 시장에 대한 류 대표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해외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리테일 중심이었다가 지금은 거의 80%가 법인 기관투자자, 20%가 개인투자자 점유율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바뀔 것 같고, 한국은 지금 현재 100% 개인투자자 시장인데 그 규모의 80%가 법인 기관투자자 쪽으로 바뀌게 되면 엄청난 수요가 커스터디에 몰릴 거라고 봅니다."
글로벌 전략과 스테이블코인 허브 구축
비댁스는 이미 리플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스테이블코인 유통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스테이블코인을 유통시킬 때 가장 거점이 되는 인프라가 커스터디거든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각 나라별로 커스터디를 둘 수는 없고, 거점 지역별로 아시아태평양, 미주, 유럽 이렇게 나누게 될 텐데 그런 거점 지역에서의 중요한 커스터디 기업으로서 기능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난처한 클래식 수업"에서 찾는 여유
바쁜 일상 속에서도 류 대표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여유를 찾는다. 최근 읽고 있는 책도 '난처한 클래식 수업'이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님이 쓰신 책인데, 어떤 작곡가의 일생을 스토리처럼 얘기하면서 그 중간중간에 그 사람이 어떤 곡을 작곡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거든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엄청 좋아했어요"라며 웃음을 보이는 모습에서는 여전한 순수함도 엿볼 수 있었다.
좌우명: 疑行無名 疑事無功 (의행무명 의사무공)
류 대표의 좌우명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疑行無名 疑事無功
의심해서 행동하면 명성을 얻을 수 없고, 의심해서 일을 도모하면 공을 세우지 못한다
"쉽게 말하면 뭔가 일을 할 때 항상 의심하고 고민하고 이러지 말고 뚝심 있게 그냥 밀고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본인에 대한 신념과 확신이 필요하다는 거죠. 창업이라는 불확실한 길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말입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현실적 조언
안정적 커리어와 불확실한 창업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류 대표는 실용적인 조언을 전했다.
"창업을 하고 보니까 직장생활하면서 배웠고 알았던 것들이 굉장히 창업 후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젊은 분들이 처음부터 창업을 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에서 그런 경험을 좀 쌓고 나오는 게 실제로 본인이 창업을 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창업을 하고 보니까 직장생활하면서 배웠고 알았던 것들이 굉장히 창업 후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젊은 분들이 처음부터 창업을 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에서 그런 경험을 좀 쌓고 나오는 게 실제로 본인이 창업을 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창업은 또 다른 세계였다. "직장생활을 거의 20년 가까이 했던 사람도 나와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닥쳐서 당황하고 괴로워했는데, 아예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창업을 한다면 더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창업의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창업을 했던 사람들 밑에서 그 사람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배워서 실패 확률을 줄인 다음에 창업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요."
"디지털자산 전문 금융기관으로의 비전"
마지막으로 류 대표는 비댁스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했다.
"비댁스는 설립 당시부터 디지털자산 전문 금융기관으로서 발전시키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던 기업입니다. 지금 규제도 많이 변하고 있고, 사실상 금융기관과 동일한 내용으로 규제가 바뀌고 가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처음에 가졌던 그 비전을 실행해나갈 겁니다."
서울대 공대에서 빅로펌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쌓아온 류홍열 대표. 하지만 그는 안정된 길을 벗어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길을 택했다. "의심해서 움직이면 공을 얻을 수 없다"는 그의 좌우명처럼, 확신과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그의 도전이 한국의 디지털자산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