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RP 레저(XRPL)가 양자컴퓨터 위협에 대비한 차세대 암호화 기술 실험에 착수했다. 메인넷 적용에 앞서 개발자 테스트 네트워크에서 양자 내성 암호의 성능과 현실적 적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단계다.
XRPL Lab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니스 안젤(Denis Angell)은 최근 개발자 네트워크인 AlphaNet에 양자 내성 디지털 서명 알고리즘을 통합했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에는 격자 기반 암호 방식인 CRYSTALS-Dilithium이 적용됐으며, 계정 서명과 거래 검증, 검증자 합의 등 네트워크 핵심 보안 구조가 테스트 대상이다.
현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한 대부분의 블록체인은 타원곡선암호(ECC)를 사용하고 있다. ECC는 기존 컴퓨팅 환경에서는 높은 보안성을 유지하지만, 충분히 발전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할 경우 쇼어(Shor) 알고리즘을 통해 공개키로부터 개인키를 역산할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점이 지적돼 왔다. Dilithium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표준으로 채택한 양자 내성 디지털 서명 방식(ML-DSA)으로, 이러한 위협을 전제로 설계됐다.
다만 양자 내성 암호 도입에는 명확한 비용 부담이 따른다. 기존 ECDSA 서명이 약 64바이트인 데 비해, Dilithium 서명은 약 2.4KB에 달한다. 이는 네트워크 대역폭과 저장 공간 사용량을 크게 늘릴 수 있으며, 거래 처리 속도와 효율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XRPL이 AlphaNet 실험을 진행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보안 강화와 성능 저하 간의 균형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 체계를 무력화하는 이른바 ‘Q-Day’의 도래 시점을 두고 업계 전망은 엇갈린다. 일부는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지만,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을 비롯한 업계 인사들은 양자 위협이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며 조기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위협 시점과 무관하게, 블록체인 인프라 차원에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XRPL의 이번 실험은 주요 퍼블릭 블록체인 가운데 양자 내성 암호를 실제 네트워크 환경에 적용해 검증하는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향후 테스트 결과에 따라 메인넷 적용 여부와 단계적 전환 전략이 논의될 전망이다.





